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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무료 미리보기 · 4 / 20화

천재는 사기로 키운다

1부 · 검신은 노인이어야 한다

"검신(劍神)."

죽은 자만 아는 이름이, 솜털 난 내 얼굴 앞에서 울렸다.

심장이 한 박자 멈췄다.

피가 발끝으로 쏠리는 게 느껴졌다. 회귀하고 처음이었다. 골패상 멱살에도, 추출당 진법 한가운데서도 안 떨던 속이, 이 한마디에 출렁였다.

하지만 사기꾼의 심장은 멈춰도 얼굴은 안 멈춘다. 전생 내내 그렇게 살았다. 패가 썩어도 표정은 단풍이어야 한다. 그게 이 바닥 첫 수업이다.

나는 패안을 열었다. 묵단이라는 자의 패를 읽었다.

[패안(牌眼)] 패주(牌主): 묵단 · 회수자(回收人) 보이는 패: 살수의 기운, 문양 세력 소속 숨은 패: 확신 — 반(半) 거짓 — "틀림없군"은 허세다. 그는 떠보고 있다. 가진 증거: 없음. 내 반응만 노린다.

반.

그래, 반이었다.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반이면 됐다. 노름은 십할로 이기는 게임이 아니다. 상대가 반밖에 못 들었으면, 나머지 반은 내가 채워 넣으면 된다. 진실이든 거짓이든.

끗발이가 내 어깨에서 캭, 하고 울었다.

"구라!"

거짓을 짚는 소리다. 묵단은 "틀림없다"고 했지만 사실 확신이 없었다. 손버릇 하나 보고 던진 미끼였다. 내가 흠칫하면 그게 증거가 되는 거다.

노름판 초짜나 하는 짓이다. 패도 안 들고 상대 표정으로 베팅하는 거. 표정으로 따려는 놈은, 표정으로 잃는다.

문제는, 방금 내 표정이 반 박자 흔들렸다는 거다. 그걸 저놈이 봤느냐가 관건이었다.

나는 웃었다.

빵 터졌다는 듯이. 배를 잡고 어깨를 들썩이며.

"풉— 검신? 방금 검신이라고 했어, 형씨?"

묵단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예상 못 한 반응에 패를 다시 세는 눈이었다.

"형씨, 그거 알아? 검신 사칭은 목 날아가는 죄야. 천하의 검신을 사칭한 애새끼라고 소문나면, 내일 아침에 정파 사파가 줄 서서 내 목 가지러 와."

나는 손가락으로 내 솜털 난 뺨을 긁었다. 일부러 천천히, 보란 듯이.

"근데 봐 봐. 내 얼굴. 열여덟이야. 검신 소리 들을 고수라면 다들 머리 허연 노친네부터 떠올리지. 근데 그게 솜털도 안 벗은 노름꾼이라고? 형씨가 그렇게 보고하면, 형씨 윗선이 형씨를 먼저 의심할걸."

이게 갭의 쓸모다.

아무도 열여덟짜리가 천하제일이라고는 안 믿는다. 통념이라는 건, 가장 두꺼운 가면이다. 내가 쓴 게 아니라 세상이 씌워 준 가면.

검신은 노인이어야 한다. 수염이 희고 등이 굽고 눈빛이 깊어야 한다. 세상이 그렇게 믿는다. 그 믿음이 내 솜털 난 뺨보다 더 단단한 갑옷이다. 진실이 너무 우스우면, 아무도 안 믿는다. 그게 회귀가 내게 쥐여 준 패였다.

"손버릇은……"

묵단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 글자씩 무게를 달며.

"천수의 손버릇이었다. 골패상 등치는 방식. 똑같았어."

"아, 그거?"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별것도 아니라는 듯.

"노름판에서 천수 소리 좀 들었다고 검까지 잘 쓰나? 형씨도 패 돌리는 법이나 배워 봐. 도박장에서 개꿀이야."

거짓에 진실을 한 꼬집 섞으면, 거짓이 진실 행세를 한다. 나는 정말로 노름판의 천수였다. 그 사실만으로 검 실력까지 증명할 수는 없다. 저놈이 내놓은 증거는 손버릇 하나뿐이니까.

완전한 거짓말은 들킨다. 어딘가 결이 안 맞으니까. 근데 절반이 진짜인 거짓말은, 그 진짜가 거짓을 업고 같이 통과한다. 세관 통과하는 밀수꾼처럼.

묵단의 눈이 흔들렸다.

반의 확신이, 반의 반으로 줄었다.

보였다. 그의 머릿속에서 패가 흩어지는 게. 손버릇이라는 단 한 장의 패로 여기까지 밀어붙였는데, 그 한 장이 흔들리니 판 전체가 휘청였다.

여기서 쐐기를 박아야 한다.

호구가 흔들릴 때 한 번 더 밀어야 한다. 멈추면 다시 패를 센다.

"형씨."

나는 한 발 다가가, 아주 친절하게 속삭였다. 위협이 아니라 충고처럼.

"확실하지도 않으면서 패를 까는 거 아니야. 그러다 가진 거 다 잃어. 윗선한테 '검신 찾았다'고 했다가 아니면? 형씨 모가지부터 회수당할 텐데."

회수자에게 회수당한다는 말.

저놈의 일이 '회수'다. 영약을 회수하고 흔적을 회수하고 입을 회수한다. 그 회수자가 헛걸 보고하면, 다음에 회수되는 건 저놈 자신이다. 제 일의 칼끝을 제 목에 댄 셈이다.

묵단의 표정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그는 한참 나를 들여다봤다. 패를 읽으려는 눈. 하지만 그는 패안이 없고 나는 있다. 이 판은 처음부터 내가 그의 패를 다 보고 있었다.

장님이 눈 뜬 자와 노름하는 꼴이다. 이길 수가 없는 판이었다, 처음부터.

그래도 나는 웃는 얼굴을 거두지 않았다. 여기서 한 톨이라도 안도하는 기색을 비치면, 그게 또 패가 된다. 호구를 다 등쳐먹고도, 마지막 한 푼까지 받아 챙기기 전엔 자리에서 안 일어나는 게 노름꾼이다. 끗발이도 알아챘는지, 어깨 위에서 조용히 묵단의 등을 노려보고 있었다.

"……기억해 두지."

묵단이 물러섰다.

"애송이 노름꾼 한세류. 변방 막판무관."

이름을 꾹꾹 눌러 새기는 말투였다. 오늘 못 딴 판을, 다음에 따러 오겠다는 뜻이었다.

그가 검은 영약 상자를 고쳐 들었다. 상자에 새겨진 문양이 등롱 빛에 번들거렸다. 회귀 전, 혈겁의 첫날 봤던 그 문양.

저 문양을 다시 보는 것만으로 등줄기가 서늘했다. 이십 년 뒤, 저 문양이 천하를 분홍빛으로 적신다. 그 시작이 지금, 내 앞에서 영약 상자를 들고 서 있다.

"……언젠가, 네 재주가 정말 노름뿐인지. 다시 확인하러 오지."

묵단은 사라졌다.

어둠 속으로, 발소리도 없이. 살수다운 퇴장이었다.

나는 그가 사라진 어둠을 한참 봤다.

위기를 넘긴 게 아니다. 미뤘을 뿐이다. 외상처럼.

외상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 이자까지 쳐서. 저놈은 다시 온다. 그땐 패를 들고 올 거다. 손버릇이 아니라, 진짜 증거를 들고.

"……시간 좀 벌었네."

겨우 숨을 골랐다. 솜털 난 손바닥에 식은땀이 배어 있었다.

번 시간엔 할 일이 있다.

비단옷 사내 — 하린을 끌고 온 명문가 자제는, 이 소동 내내 멀뚱히 서 있었다.

검신이니 천수니 하는 소리가 오갔지만 저 졸부 자제는 한 글자도 못 알아들었다. 호구는 자기 머리 위에서 무슨 판이 도는지 모른다. 알았으면 호구가 아니지.

볼일은 끝났다는 듯, 그가 코웃음 치며 돌아섰다.

"폐품 처리 잘 부탁한다, 애송이 관주."

가마가 떠났다. 비단 깃발이 어둠 속으로 멀어졌다.

마당에 남은 건, 쇠고랑 찬 소녀 하나.

연하린.

그 애는 무릎을 꿇은 채, 땅바닥을 노려보고 있었다. 도망도, 반항도 안 했다. 그냥 노려봤다. 세상 전부를.

저 눈을 안다. 회귀 전, 도구로 쓰이다 버려진 놈들의 눈. 세상을 미워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서, 미워하는 것 말고는 할 줄 모르게 된 눈.

나는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패안(牌眼)] 패주(牌主): 연하린 · 17세 보이는 패: 검 — 이류 (눌려 있음) 숨은 패: 검신(劍神)에 닿을 검재 깨달음: 본인도 모르는 채 이미 절정 직전 막힌 곳: 벽이 아니라 쇠고랑 — "휘둘러도 된다"는 허락

봐도 봐도 기가 막힌 패다.

나찬이 백 년에 하나라면, 이 애는 그 위였다. 그런데 이류에 묶여 있었다. 누가 일부러, 재능을 휘두를 때마다 벌을 줬다. 그래서 스스로 손을 묶었다.

세상에서 제일 아까운 패.

영약으로 산 천재는 돈만 있으면 또 만든다. 근데 이런 패는, 하늘이 백 년에 한 번 돌린다. 그걸 손에 쥐고도 발로 밟은 놈이 있다는 게, 같은 사기꾼으로서 기가 찰 노릇이었다. 등쳐먹을 줄도 모르는 호구가 보물을 쥐었다.

"날 왜 샀어."

하린이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며칠 굶고 얻어맞은 목이었다.

"안 샀어."

내가 일어섰다.

"넌 공짜야. 저 자식이 버린 거 주운 거지."

"……그럼 왜 안 버려."

질문이 아니었다. 체념이었다. 어차피 너도 날 쓰다 버릴 거잖아, 라는.

나는 끗발이를 어깨에 올렸다. 끗발이가 하린을 보며 "끗" 하고 울었다. 패 있다, 라는 뜻.

"버리긴 왜 버려. 저놈이 네 가치를 몰랐다고 나까지 모르겠냐?"

하린이 고개를 들었다. 처음으로, 노려보는 것 말고 다른 눈을 했다. 못 알아들었다는 눈.

"너, 천하제일이 될 거거든. 근데 그 쇠고랑 찬 채로는 안 돼."

나는 돌아서며 말했다. 등을 보이고.

"그거, 내가 안 풀어 줘. 네가 끊어."

등 뒤에서, 쇠고랑이 절그럭, 한 번 울렸다.

하린의 눈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딜에 앉힌 천재: 1명 (나찬) → 곧 2명? 검신의 정체: 아직 들키지 않음 (묵단 — 확신 반의 반). 새 미결산: 묵단은 패를 들고 다시 온다. 혈겁까지: 약 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