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끼인 걸 알면서 가요?"
나찬이 초청장을 노려보며 물었다. 금박 봉투가, 그 눈엔 독사처럼 보이는 모양이었다.
"가야지."
"함정이라면서요."
"함정이지. 근데."
나는 평상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굳은 허리를 폈다. 솜털 난 몸뚱이는 가벼운데, 안에 든 전생은 여전히 무겁다.
마당 가득 모인 천재들을 둘러봤다.
나찬, 하린, 두식. 그리고 소문을 듣고 모여든 떡잎들. 멍든 얼굴들, 부러진 검을 쥔 손들, 처음으로 갈 곳이 생긴 눈들.
"호랑이 굴이 제일 좋은 노름판이야. 호구가 많거든."
나찬이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 호랑이 굴에 호구가 많다니. 근데 틀린 말이 아니다.
비무대회에는 명문이 영약으로 키운 후기지수를 전부 데려온다. 누가 무엇을 먹여 키웠는지, 그 결과가 한 무대 위에 모인다.
그 한복판에, 우리가 들어간다.
영약으로 산 천재들 사이에, 피로 익힌 천재들을 데리고.
"영약으로 산 내공은 피로 익힌 내공을 못 이겨."
나는 나찬을 봤다. 추출당에서 제 손으로 벽을 넘은 놈. 영약으로 익힌 내공을, 제 분노로 제 것으로 만든 놈.
"그걸 천하가 다 보는 무대에서 증명하는 거야. 너희가 그 후기지수들을 한 명씩 꺾으면 어떻게 될까?"
하린이 천천히 답했다. 영리한 계집애다. 늘 반 박자 먼저 안다.
"……'영약으로 천재를 만든다'는 말이 거짓이란 게 들통나요."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영약으로 산 천재가 진짜 천재한테 무대 위에서 줄줄이 깨지면 영약 값도 수확판의 권위도 같이 무너지지."
미끼를 던진 건 저쪽이다.
그들의 무대에서 그들의 셈법을 산산조각 낸다. 미끼를 물되, 끌려갈 쪽은 우리가 아니다.
"근데 그게…… 위험하지 않아요?"
떡잎 하나가, 겁먹은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부러진 검을 쥔 그 계집애였다.
"위험하지."
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사기꾼의 가장 정직한 말은, 위험을 숨기지 않는 거다.
"안 가면 저쪽이 우리 안방으로 와. 기왕 싸울 거면 천하가 보는 무대가 낫지. 거기선 저들도 누군가를 함부로 죽이진 못해."
계집애가 성한 손으로, 부러진 검을 고쳐 쥐었다. 눈의 독기가, 조금 단단해졌다.
부목을 잡은 계집애가 먼저 허리를 펴고, 그 옆의 떡잎들도 부러진 무기를 고쳐 쥐었다.
겁에 질린 눈동자들에 도망칠 자리를 가늠하던 눈치가 사라졌다. 초청장이 이제야 진짜 출전표처럼 보였다.
"호랑이가 불러 줬으니 잘됐어."
나는 씩 웃었다.
"호랑이 안방에서 이빨을 뽑자고."
두식이 거대한 주먹을 쥐었다. 우두둑, 소리가 났다.
"……저, 이젠 안 무서워요. 지킬 수 있어요."
얼마 전까지 칼만 보면 떨던 거구였다. 휘두르면 죽인다고 평생 제 손을 무서워하던 놈. 그 손이, 이젠 지키는 손이 됐다.
"그래. 너흰 이제 혼자가 아니니까."
나는 모여든 천재들을 봤다. 한 장이 아니라, 한 무더기.
부러진 검을 쥔 손 옆으로 나찬의 검집과 하린의 손목, 두식의 큰 주먹이 한 줄로 보였다.
회귀 전엔 나 하나만 앞에 서고 나머지는 등 뒤로 밀려났다. 지금은 서로의 손과 무기가 나란히 남았다.
이번엔 누군가 흔들리면 옆에서 손을 낼 사람이 있다.
그 차이면 호랑이 굴에 들어갈 밑천으로는 충분했다.
"근데 사부."
나찬이 팔짱을 꼈다.
"우린 넷이고, 저긴 천하의 명문이 다 모여요. 영약으로 부풀렸어도, 수가 수십 배잖아요."
"그러니까 노름판이지."
나는 손가락을 까딱했다.
"수십 명이 한꺼번에 덤비는 싸움은 아니잖아. 비무대에선 한 명씩 상대하면 돼. 그 한 명의 빈틈부터 읽자고."
하린이 픽 웃었다. 두식은 무슨 말인지 반쯤만 알아들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떡잎들은 눈만 끔뻑였다.
전부 알아듣진 못해도, 도망치겠다는 눈은 하나도 없었다. 지금은 그걸로 됐다.
떠나는 날 아침.
나는 막판무관 간판을 올려다봤다. 삐뚤빼뚤한 글씨. 두식이 도로 새겨 준다는 걸, 그대로 두라고 했다. 폐가 무관엔 삐뚤빼뚤한 게 어울린다.
막판무관 — 버려진 천재만 받음. 수업료 선불.
처음엔, 폐가에 솜털 난 애송이 하나와 졸부집에서 도망친 놈 하나, 너구리 하나로 시작한 무관이.
이제 천재 셋과, 떡잎 한 무더기를 거느리고 천하 정파의 본산으로 쳐들어간다.
수업료는 선불이라더니, 이번엔 내가 호랑이 굴에 선불을 거는 셈이었다. 담보는 제자들의 안전. 판돈은 천재 독식 구조 전체. 크게 거는 판이다.
"끗발아. 갈까."
"끗!"
끗발이가 내 어깨에 폴짝 올라타 기운찬 울음을 냈다. 출발 신호였다. 그 작은 몸이, 무림맹 쪽을 보며 다시 한번 털을 곤두세웠다.
그 냄새를, 영약과 혈겁의 냄새를, 거기서 맡은 거다. 천 리 밖에서도.
종착지가, 그 너머에 있다.
천재를 그러모아 '단 하나'를 만들려는 자들. 회귀 전, 천하를 시체의 산으로 만든 그 신념. 한 장에 다 거는 자들.
이번엔, 그 길목에 막판무관이 있다.
"가자. 호랑이 굴로."
나는 제자들을 데리고 길을 나섰다.
미끼인 걸 알면서. 함정인 걸 알면서. 호랑이 입속으로 제 발로.
근데 사기꾼은, 함정인 걸 알 때가 제일 신난다. 함정인 줄 알면, 그건 더 이상 함정이 아니라 — 판이거든.
"묻고."
천재 셋에, 떡잎 한 무더기.
"더블로 간다."
같은 시각, 무림맹의 어느 깊은 전각.
비단옷을 입은 노인이, 막판무관의 출발 소식을 보고받았다.
향이 자욱한 방이었다. 창에는 두꺼운 휘장이 드리워, 빛이 들지 않았다. 그 어둠 속에서, 노인의 옥반지만 희미하게 빛났다.
"막판무관이, 초청에 응했다고?"
비단옷 노인의 물음에 전령이 바닥에 이마를 조아렸다.
"예. 관주와 제자들이 이리로 오고 있습니다."
노인이 미소 지었다. 주름이 깊게 패였다.
그의 손에는, 명단이 한 장 들려 있었다. 천하의 천재 이름이 빼곡한 명단. 한 줄 한 줄이, 영약으로 익힌 그릇들이었다. 어디서 줍고 무엇을 먹이고 언제 수확할지가 적힌 농사 장부.
그 끝에, 막판무관 네 이름이 한 줄로 묶여 있었다.
한세류. 나찬. 연하린. 두식.
앞장에 따로 적혀 있던 이름들까지 끌어와 막 그어 넣은, 잉크도 안 마른 줄.
"제 발로 밭에 들어와 주다니, 기특한 묘판이군."
노인이 그 네 이름을 손끝으로 쓸었다. 마치 잘 익은 곡식을 만지듯.
"보름 만에 천재 셋을, 그것도 영약 없이 키웠다고 했지. ……어떻게 가능한 묘판인지 직접 봐야겠어. 진짜라면 그 비법까지 수확하면 되고."
"……관주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전령이 조심스레 물었다.
"숨겨? 변방 도박촌 애송이가?"
노인이 짧게 코웃음을 쳤다.
"숨긴들 어떠냐. 밭에 들어온 이상 익으면 베고, 안 익으면 갈아엎으면 그만이지. 묘판이 영악해 봤자 낫을 든 건 이쪽이야."
자만이었다. 호구가 가장 무서워하는 건 자기가 모르는 거라더니, 이 노인은 모르는 게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패를 가장 크게 깔아 주는 호구는, 늘 자기가 딜러인 줄 아는 자다.
노인이 창가로 걸어갔다. 휘장을 한 뼘 젖혔다.
창밖, 천 리 밖 어둠을 바라봤다.
그 너머 어딘가. 천하의 모든 재능을 그러모아 빚고 있는 '단 하나'가 — 아직 미완인 채로, 완성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비무대회는, 그 '단 하나'에 바칠 재료를 수확하는 밭일 뿐이고.
"이번 수확은 풍년이겠어."
노인이 명단을 쓰다듬었다. 그 손길이, 다정해서 더 섬뜩했다.
휘장이 다시 닫혔다. 방은 도로 깊은 어둠에 잠겼고, 탁자 위의 향로에서만 회색 연기가 실처럼 가늘게 피어올랐다. 천하의 내로라하는 떡잎들을 한데 모아 놓은 거대한 수확판이, 소리 없이 아가리를 벌리고 막판무관의 마차가 당도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막판무관, 미끼인 줄 알면서 무림맹 비무대회로 향하다 — 판을 거꾸로 무는 출사표. 딜에 앉힌 천재: 3명(나찬·하린·두식) + 모여든 떡잎들. 검신의 정체: 묵단에게만 발각(봉합), 무림맹엔 아직 비밀. 새 무대: 무림맹 — 천재를 수확하는 밭. 그 안방에서 '천재 독식' 구조를 흔든다. 새 위기: 비무대회는 먼 곳의 '단 하나'에 바칠 재료를 수확하는 밭 — 막판무관 넷이 이미 재료 명단에 올랐다. 혈겁까지: 약 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