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식의 이야기는, 죽 세 그릇 값이었다.
사기꾼은 입을 여는 데 돈을 쓴다. 나찬은 한 그릇으로 다 불었는데, 두식은 세 그릇이 들었다. 그만큼 깊이 묻어 둔 얘기라는 뜻이다.
거구는 죽 세 그릇을 비우고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거대한 손으로 그릇을 감싸 쥔 채, 식은 국물만 들여다보면서.
열 살 때였다고 했다.
산골 마을. 어느 밤 산적이 들이닥쳤다. 불을 지르고 사람을 베었다. 비명과 불길이 골짜기를 채웠다고 했다. 두식은 그때 처음 도를 잡았다. 할아버지가 쓰던, 녹슨 도를. 부엌 구석에 걸려 있던, 평생 무 한 번 안 썰어 본 칼을.
타고난 그릇이었다. 한 번도 안 배운 칼이, 손에 붙었다. 마치 원래부터 그 손에 있던 것처럼. 두식은 산적 셋을 베었다. 열 살짜리가, 칼 한 번 안 배운 채로.
문제는, 멈출 줄을 몰랐다는 거다.
타고난 그릇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이기도 하다. 담을 줄만 알고 따를 줄을 모르면. 강물이 둑 없이 쏟아지듯, 힘이 제멋대로 뻗는다.
"도기(刀氣)가…… 제 뒤까지 갔어요."
두식의 거대한 손이 떨렸다. 식은 그릇이 손안에서 달그락거렸다.
"산적만 벨 줄 알았는데. 뒤에 있던…… 절 키워 주신 할아버지랑, 옆집 누이랑…… 같이."
나는 죽 그릇을 내려놓던 손을 멈췄다.
두식은 그날, 산적을 다 베었다. 마을을 지켰다.
그리고 제 손으로, 제가 지키려던 사람들을 함께 베었다. 등 뒤에 있던, 가장 아끼던 사람들을.
열 살짜리 손에서 뻗은 도기는,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았다. 가릴 줄을 몰랐으니까. 그 나이에 누가 그걸 가르쳐 줬겠나.
"다들 그랬어요. 저더러 괴물이라고. 산적보다 무섭다고. 칼을 들면…… 누구든 죽인다고."
마을을 구한 아이를, 마을이 괴물이라 불렀다. 살려 준 손을, 다들 무서워했다. 열 살짜리가 그 말을 십 년을 지고 다닌 거다.
그래서 두식은 칼을 천으로 묶었다. 다시는 안 뽑겠다고. 매듭 하나에 사람 하나씩 갚는 것처럼, 묶고 또 묶었다. 덩치만 산만 하게 자라서, 짐이나 나르고 맞아도 안 휘두르는 사람이 됐다.
황소 같은 어깨에, 매 맞는 아이의 마음을 얹고서.
"안 휘두르면, 아무도 안 죽으니까요."
두식이 그 말을 할 때, 끗발이가 내 무릎에서 작게 울었다. "끗." 슬픈 소리였다. 이놈도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나는 한참을 말없이 들었다.
[패안(牌眼)] 패주: 두식 · 20세 그릇: 화경 막힌 곳: 공포 — "내 칼은 지키는 게 아니라 죽인다" 비고: 분노(나찬)는 불을 붙이면 되고 허락(하린)은 멍석을 깔면 된다. 공포는…… 둘 다 안 통한다. 공포는 더 깊다.
까다로운 패다.
지금껏 내가 주운 패들엔 다 자물쇠가 하나씩 채워져 있었다. 자물쇠가 다르면 여는 법도 다르다.
나찬은 분노가 막고 있었다. 제 몸을 단지로 쓴 가문에 대한 분노. 그건 불을 붙여 줬다. 분노는 좋은 종잣돈이다. 불만 대면 알아서 탄다.
하린은 허락이 없어서였다. 평생 누구도 "휘둘러도 된다"고 안 해 줬으니까. 그건 멍석을 깔아 줬다.
근데 두식은 — 공포다. 그것도 "내 힘이 사람을 죽인다"는, 가장 뿌리 깊은 공포. 불을 붙이면 더 무서워하고 멍석을 깔면 도망친다. 앞의 두 수가 다 안 통한다.
이건 판으로 해결될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평생 패를 읽어 왔지만 패를 읽는 것과 사람의 공포를 푸는 건 다른 일이다. 패는 종이지만 공포는 살이다.
회귀 전에도 이런 놈을 본 적 있다. 재능이 너무 커서, 그 재능이 두려워 스스로를 봉인한 놈. 그런 놈은 결국 아무것도 못 하고 시들었다. 천하제일이 될 그릇으로 태어나, 골방에서 늙어 죽었다. 나는 그때 그냥 지나쳤다. 내 검만 보느라. 그땐 그게 아까운 줄도 몰랐다.
이번엔, 안 지나친다.
지나친 놈들이 다 내 등 뒤에서 죽었으니까. 이름도 불러 주지 못한 채로. 패는 다 읽으면서 사람 하나 못 건진 채로.
두식의 그릇을 다시 봤다. 화경. 저 그릇을 제대로 채우면, 혈겁의 그날 내 등 뒤에서 죽을 놈 하나가 줄어든다. 아니 — 거꾸로, 내 등을 지켜 줄 칼 하나가 는다. 어느 쪽이든, 주워야 할 패다.
다만 그 칼을 깨우는 값이, 다른 둘보다 비싸다는 게 문제였다.
"사부! 또 무슨 거지를 주워 와요?"
막판무관에 돌아오니, 나찬이 두식을 보고 인상을 썼다. 팔짱을 끼고 위아래로 훑으면서.
"……쟤가 천재라고요? 짐꾼이?"
제 눈엔 그냥 큰 짐꾼으로 보였겠지. 영약으로 일류까지 간 놈이라, 사람을 경지로 재는 버릇이 들었다.
두식은 나찬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는데도, 잔뜩 움츠러들었다. 거구가 작아 보이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큰 몸이 작아 보이려고 애쓰는 건,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좀 답답했다.
하린이 두식을 가만히 봤다. 한참을. 그러더니, 작게 말했다.
"……나도 못 휘둘렀어."
두식이 하린을 봤다. 처음으로, 사람 눈을 똑바로.
"무서웠지. 휘두르면 안 된다고, 몸이 외웠지."
하린이 제 손목을 보였다. 쇠고랑이 끊긴 자국이 아직 남아 있었다. 붉은 흉이 손목을 한 바퀴 둘렀다. 평생 갈 자국이다.
"근데, 휘둘러야 할 때가 있더라."
두식의 눈이 흔들렸다.
처음으로, 자기 같은 사람을 만난 거다. 칼을 무서워하는 게 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처음 안 거다.
하린이 겪은 일이라서일까. 두식은 그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찬도 그 분위기에 입을 다물었다. 못마땅한 표정 그대로, 더는 거지라는 말은 안 했다.
[패안(牌眼)] 패주: 두식 공포: 100 → 98 (아주 조금, 그러나 처음으로 줄었다) 변화 — "나만 괴물인 줄 알았다" → "나 같은 사람이 있다"
98.
겨우 둘 줄었다. 백에서 둘. 한심한 숫자 같지만 아니다.
0에서 안 움직이던 게, 처음 움직였다. 굳은 자물쇠에 처음으로 기름 한 방울이 들어간 거다. 한 번 도는 걸 본 자물쇠는, 결국 열린다.
이제 판을 짤 수 있겠다.
분노도, 허락도 안 통하는 공포. 근데 방금 하린이 그 한 귀퉁이에 금을 냈다. 그 금을 따라, 판을 깔면 된다.
다만 — 너무 천천히는 안 된다. 묘판에 떡잎이 굵게 자라면, 줍는 손도 빨라진다. 도박촌 골목 어딘가에서 지금도 천재를 솎아 내는 눈들이 반짝이고 있을 터였다. 나만 두식을 알아본 게 아닐 테니까.
그날 밤.
도박촌 짐꾼 거리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밤공기를 찢는 비명이었다. 한둘이 아니었다.
두식이 벌떡 일어났다. 평상이 그 무게에 통째로 들썩였다.
"저, 저긴—"
짐꾼 동네였다. 두식이 정 붙이고 살던 곳. 같이 짐 나르던 사람들, 그를 괴물이라 부르면서도 죽은 안 굶긴 사람들. 그래도 거기가, 두식한테는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동네였다.
거기에, 횃불이 올랐다. 골목 위로 불빛이 번져, 밤하늘이 벌겋게 물들었다.
독사방 잔당이었다. 사갈이 무너진 뒤 흩어진 놈들이, 분풀이로 짐꾼 동네를 덮친 거다.
아니 — 분풀이가 아니었다.
끗발이가 그쪽을 보며 사납게 울었다.
"끗! 구라!"
거짓을 짚는 소리. 분풀이인 척, 다른 목적이 있다는 소리.
이놈은 손해 보는 판엔 내 편도 아니지만 거짓 하나는 귀신같이 짚는다. 끗발이가 구라를 외쳤으면, 저 횃불은 화풀이가 아니다.
나는 눈을 좁혔다. 잔당들이 짐꾼들을 한곳에 몰고 있었다. 마구잡이로 부수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사람을 세워 놓고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두식을. 천재를. 회수하러 온 거다.
사갈이 흘린 말 그대로다. 윗선이 떡잎을 쓸어 모은다. 내가 두식을 알아본 그 밤에, 저쪽도 움직인 거다. 묘판의 굵은 모종은, 누구 눈에나 굵게 보인다.
두식의 거대한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횃불을 보는 눈에, 십 년 전 그 밤의 불길이 겹쳐 보이는 모양이었다.
"또…… 또 내 옆에서, 사람이……"
두식이 두 손으로 제 칼을 끌어안았다. 풀리지 않게. 또, 풀리지 않게.
내가 짤 판이, 생각보다 빨리 깔리게 생겼다. 멍석을 펼 새도 없이, 무대가 먼저 열렸다.
두식의 공포: 98. 첫 균열. 새 위기: 독사방 잔당(천재 수거의 끄나풀)이 짐꾼 동네를 덮치다. 두식의 시험대가 열렸다. 딜에 앉힌 천재: 2명(나찬·하린). 혈겁까지: 약 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