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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무료 미리보기 · 16 / 20화

천재는 사기로 키운다

1부 · 영약이 흐르는 길

검은 환약 한 줌을, 탁자에 늘어놓았다.

일곱 알. 손톱만 한 검은 구슬들이 등롱 불빛을 빨아들였다. 빛을 받으면 보통 윤이 나기 마련인데, 이놈들은 거꾸로였다. 빛이 닿는 자리마다 색이 죽었다. 마치 작은 구멍이, 탁자 위에 일곱 개 뚫린 것 같았다.

끗발이는 멀찍이 떨어져서 털을 곤두세웠다. 가까이도 안 갔다.

평소 같으면 탁자 위의 뭐든 코부터 들이밀고 보는 놈이다. 먹을 거면 채 가고 아니면 발로 툭 굴려 보는. 그런 놈이, 탁자 끝에 등을 붙이고 꼬리를 말았다. 그 작은 짐승이, 영약을 무서워했다.

"끗발아. 너 이게 뭔지 알지?"

"……끗."

평소의 활기가 없었다. 끝이 떨리는, 겁에 질린 소리였다.

나는 환약 하나를 집어 코끝에 댔다. 비릿하고 들큰했다. 보약 냄새 같기도 하고 오래 묵은 핏물 냄새 같기도 했다. 코로는 그뿐이었다. 근데 끗발이는, 코가 아니라 다른 데로 이걸 맡고 있었다.

끗발이는 거짓을 짚고 재능을 짚는 영물이다. 패가 있으면 "끗", 거짓이면 "구라", 위험하면 사납게 운다. 그게 이 녀석의 밥벌이다. 그런 놈이 이 영약 앞에서 고통스러워한다.

뜻은 하나다. 이 약 속에, 끗발이와 상극인 무언가가 들어 있다.

나는 그 정체를 아직 모른다.

하지만 회귀 전의 기억 한 조각이, 등골을 타고 천천히 올라왔다. 잊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는, 그 마지막 날의 냄새가.

혈겁의 그날. 하늘이 무너지던 순간, 내 칼에 갈라지던 적들의 몸. 거기서 풍기던 냄새. 피와 영약이 뒤섞인, 사람 것도 짐승 것도 아닌 그 역한 냄새.

오래 검을 쥐며 숱한 피 냄새를 맡았어도, 그 냄새만은 잊을 수 없었다.

이 환약에서, 똑같은 냄새가 났다.

손끝이 서늘해졌다.

영약이 흐르는 길을 쫓았다.

진가가 분 대로였다. "도박촌 위로. 더 위로. 무림맹까지…… 다 한 줄로 이어져 있어. 영약이 흐르는 길이." 무릎 꿇은 잔당 두목이 떨면서 게운 말이었다. 죽기 싫은 놈의 입은, 사기꾼의 그것보다 정직하다.

끗발이의 코로, 사흘을 추적했다.

녀석은 영약을 무서워하면서도, 그 냄새는 기막히게 짚었다. 무서운 만큼 잘 맡았다. 골목 어귀에서 코를 킁킁대다 한쪽으로 발딱 서면, 거기 길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길이.

추적 둘째 날, 뒷골목에서 한 장면을 봤다.

비단옷 입은 사내가, 거적때기 위에 쓰러진 아이에게 죽 한 그릇을 내밀고 있었다. 다정한 손짓이었다. 거둬 주는 척, 구해 주는 척. 아이는 그 손을 잡았다. 잡을 수밖에. 사흘 굶은 놈한테, 죽 한 그릇은 천하보다 무겁다.

나도 죽 한 그릇으로 나찬을 샀다. 손은 같다. 다른 건 다음이다. 나는 그놈한테 천하제일을 약속했고 저 사내는 저 아이를 밭에 묻을 거다.

나는 발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 끼어들면, 길 전체를 못 본다. 미안하다는 말을, 속으로만 삼켰다. 사기꾼은, 더 큰 판을 위해 작은 패를 흘려 넘길 줄도 알아야 한다.

길은 한 줄로 이어졌다.

도박촌의 버려진 천재들. 가문에서 쫓겨나고 사문에서 버려지고 재능이 너무 튀어 짓밟힌 아이들. 그 아이들을 독사방 같은 흑도가 줍는다. 적선하는 척, 거둬 주는 척. 그러고는 영약을 먹여 '익힌다'. 다 익으면, 어디론가 보낸다.

그 끝은, 위였다.

중간 도매상은 나가(羅家) 같은 졸부 가문들이었다. 나찬에게 영약을 먹였던, 사람을 단지로 쓰던 그 나가. 졸부들은 영약 그릇을 사들여 내공을 숙성시키고 다 익으면 윗선에 납품했다. 제 위에 손이 몇 겹 더 있는지도 모르면서. 호구가 늘 그렇듯.

그리고 그 가문들 위에, 더 큰 손이 있었다.

영약은 결국, 무림맹 산하 명문들로 흘러 들어갔다.

천하 정파의 본산. 명문 중의 명문. 거기서, 또 다른 나찬이, 또 다른 두식이, 또 다른 하린이 — 영약을 먹고 '천재'로 길러지고 있었다. 자기가 길러지는 줄도 모르고. 가문의 자랑인 줄 알고.

"……이건 장사가 아니야."

나는 중얼거렸다. 사흘을 쫓고서야, 길의 모양이 한눈에 들어왔다.

"농사야."

천재를 농사짓고 있는 거다.

씨앗을 뿌린다. 재능 있는 아이. 거름을 준다. 영약. 길러서, 수확한다. 도박촌은 묘판이고 졸부 가문은 밭이고 무림맹 명문은 창고다. 한 줄로 늘어선, 거대한 농사.

그리고 수확한 천재들을, 어디론가 보낸다.

단 한 곳으로.

길은 거기서, 안개처럼 끊겼다. 끗발이의 코도 그 너머는 못 짚었다. 더 가려다, 녀석은 발을 멈추고 내 다리에 바짝 붙었다. 거기서부터는, 코가 아니라 본능이 가지 말라고 우는 것 같았다.

[패안(牌眼) — 판세 읽기] 영약이 흐르는 길: 버려진 천재(묘판) → 흑도(수거) → 졸부 가문(숙성) → 명문(창고) → ??? 종착지: 미상. 단 하나의 무언가. 회귀 전 기억과 일치: 혈겁의 냄새. 결론: 누군가, 천재 전부를 한곳에 그러모으고 있다.

회귀 전에도 이 길은 있었다.

나는 그때도 단서를 봤다. 그리고 번번이 검신을 부르는 더 급한 일 뒤로 밀었다.

천하제일이라는 자리는, 시야가 좁다. 발밑밖에 안 보인다. 모두가 나를 올려다보는 동안, 나는 내 칼끝만 내려다봤다. 사라진 사람들의 채권과 출발패까지 보고도, 나는 그들을 데려간 손을 끝까지 쫓지 못했다.

그 길의 끝을 봤을 땐, 이미 시체의 산 위였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혈겁이 터졌다.

판돈이 한곳에 모이면, 그 판은 반드시 한 번에 무너진다. 그게 노름판의 철칙이다. 누군가 천하의 모든 패를 한 장에 모으고 있다면, 그 끝은 정해져 있다.

"이번 생엔, 길목마다 막는다."

나는 환약을 화로에 던졌다.

검은 구슬이 불 속에서 비명 같은 소리를 내며 탔다.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연기 속에서도 그 냄새가 났다. 피와 영약. 혈겁.

끗발이가 그제야 안도하며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작은 심장이 쿵쿵 뛰는 게 가슴에 그대로 전해졌다. 무서웠던 거다. 이 녀석이.

"……고생했어."

나는 녀석의 등을 쓸었다.

천재를 한곳에 모으는 자.

판돈을 한 장에 모는 자.

회귀 전의 나와, 똑같은 짓을 하는 자.

그게 누군지는 아직 몰라도, 그 손버릇이 무엇을 부르는지는 안다. 직접 겪었으니까. 시체의 산 위에서, 외톨이 끗 한 장으로 남아 봤으니까.

막판무관이 막을 상대가, 동네 흑도나 졸부가 아니라는 것도 — 이제 안다.

그날 밤, 손님이 왔다.

문 두드리는 소리도 없었다. 개도 안 짖었다. 마당 한가운데에, 그가 그냥 서 있었다. 달빛을 등지고 그림자처럼.

묵단.

처음 그를 만난 그날 이후로, 처음이었다.

"다시 확인하러 오겠다고 했지."

묵단이 조용히 말했다. 목소리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손에는, 그를 처음 봤을 때 들고 있던 그 검은 영약 상자가 들려 있었다.

나는 평상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마당 흙이 차가웠다.

"그새, 천재가 셋으로 늘었더군. 보름 만에. 그것도 화경의 그릇까지."

묵단의 시선이 무관 안쪽을 훑었다. 잠든 나찬을, 하린을, 헛간 문을 막고 앉은 두식의 거구를. 회수자의 눈이었다. 값을 매기는 눈.

끗발이가 내 품에서 튀어나가, 묵단을 향해 사납게 울었다.

"끗! 들킨다! 끗!"

가슴이 철렁했다.

짐꾼 광장에서 내 봉인을 풀려 할 때 들었던 소리였다. 재능을 짚는 "끗"도, 거짓을 짚는 "구라"도, 막연한 위험을 짚는 울음도 아니었다.

정체가 들킨다는, 경보였다.

이 녀석이 다시, 내 정체를 두고 울고 있었다.

나는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끼면서 겉으로는 하품을 했다. 애송이 노름꾼의 하품. 천수의 하품.

"형씨, 밤손님이면 그 약 상자 말고 술이라도 들고 오지."

능청을 떨었다. 근데 묵단은 안 넘어갔다.

그의 눈이, 처음 만났을 때의 '반의반'짜리 확신을 — 다시 채워 가고 있었다. 한 방울씩, 천천히.

"애송이 노름꾼이 보름 만에 천재를 셋이나 키웠어. 그것도 도구로 쓰다 버린 폐물들을 제 손으로 벽 너머까지 올려놨군. ……이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묵단의 손이, 천천히 검집으로 갔다.

스릉. 검집과 손바닥이 닿는 소리가, 조용한 마당에 칼날처럼 박혔다.

"천수. 아니, ……검신."

그가 내 이름을 둘로 나눠 불렀다. 가짜와, 진짜를.

"이번엔 네 제자들 목을 베어서라도 확인하고 가야겠어."

천재 독식의 전모: 누군가 천하의 천재를 단 한곳으로 그러모은다(= 혈겁의 길). 끗발이, 영약(혈기)에 고통 + 다시 "들킨다" 경보. 묵단 재등장 — 이번엔 제자들을 노린다. 정체 발각 위기 최고조. 딜에 앉힌 천재: 3명(나찬·하린·두식). 혈겁까지: 약 20년.